서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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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고회의 한 사람으로 무신정권 아래 벼슬 한 자리 하지 못한 채 평생 불우하게 살다 간 서하 임춘. 그러나 그의 문장은 “배우는 사람들이 입으로 시를 읊으면서 마음으로 흠모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고려 중기 문학을 대표하는 그의 문집을 모두 옮겼다. 가전체 소설의 효시(嚆矢)로 알려진 <국순전>·<공방전>도 만날 수 있다.
임춘의 학문 세계는 백부 종비(宗庇)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7세에 육갑(六甲)을 외고 경서를 통달했다는 자신의 기록을 보아 재능이 풍부한 신동이었던 듯하다. 이런 재질 덕분에 백부 종비의 총애를 받아서 그의 학문 세계를 전수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어려운 고사(故事)를 많이 써서 자신의 의사를 진정(陳情)하거나 또는 하사(賀謝)하는 글인 “계(啓)”는 임종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이규보는 말하고 있다. 고사로 대구(對句)를 구성해 만든 사륙문은 그대로 임춘에게도 전달되어, ≪서하집≫에 수록된 계(啓)는 임종비의 문장과 같이 기본 구조가 사륙문이다. 이러한 스타일의 문체는 백부 종비의 영향이라 하겠다.
또한 당시 문단을 뒤흔든 풍조는 소동파(蘇東坡)·황정견(黃庭堅) 문체를 배우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동파집(東坡集)≫ 등을 읽지 않고서는 문인 행세를 할 수 없었다. 임춘은 ≪동파집≫을 읽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말하듯 문체는 동파와 같다고 자랑함을 봐도 당시의 동파 존경이 어떠한가를 짐작하겠다. 망년우(忘年友)의 핵심인 이인로도 동파와 정견의 문집을 읽고서 시를 짓는 핵심을 얻었다고 했다.
≪서하집≫을 일별하면 당장에 느끼는 감정은 우선 고사투성이라는 것이다. 그의 시문 한 구절을 읽기 위해서는 고사를 모르곤 거의 불가능하다. 온통 고사로 얽어 놓은 느낌이다. 그러나 그는 탁월한 재예(才藝)로 그 고사를 잘도 주물러 놓았다.
최자는 ≪보한집≫에서 그의 문장을 이렇게 비평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그가 고인(古人)의 문체를 얻었다고 하지만 그의 글을 보면 모두 옛사람들의 말을 빼앗아 썼다. 심지어는 수십 자를 따다가 자기의 말로 삼았으니 이것은 그 문체를 얻은 것이 아니고 그 말을 빼앗은 것이다.” 이러한 준엄한 비평은 그의 문장이 고사를 많이 인용한 데서 비롯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문체가 당시의 흐름이었다. 준엄한 비평을 한 최자의 ≪보한집≫도 고사를 많이 인용하기는 피장파장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비평한 것은 난삽(難澁)한 고사 때문이다.
이렇게 어려운 글을 쓴 이면(裏面)에는 그의 인생역정(人生歷程)이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정중부의 난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발랄한 젊은 날을 보내며 장래가 훤히 보이는 그런 꿈을 꾸다가, 하루아침에 사회 체제가 바뀌면서 암담한 나날을 보낸 그의 비극적 운명은 이러한 고사를 인용해 심금을 달래고 때로는 집권자를 비난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물론 당시 문단의 조류가 고사를 인용한 문체가 풍미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 과정도 깊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임춘의 문장에 대한 이인로의 비평은 최자와는 사뭇 다르다. “선생의 문장은 고문을 배웠고 시는 소아(騷雅)의 풍골이 있어서 해동에서 벼슬하지 않은 사람으로 뛰어난 사람은 한 사람뿐이다. 그가 죽은 지 20년, 배우는 사람들이 입으로 시를 읊으면서 마음으로 흠모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장차 굴(屈)·송(宋)의 반열(班列)에 두려 한다”고 했다.
이와 같이 상반된 비평은 두 사람이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당시 문단에는 탁자(琢字: 글자를 조탁함)와 연대(鍊對: 대구를 다듬음)에 몰두하면서 사어(辭語)와 성률(聲律)을 앞세운 이인로와 임춘 계열, 그리고 기골(氣骨)과 의격(意格)을 앞세운 이규보의 계열이 맞서고 있었다. 최자는 단연 이규보 계열을 편든 것 같다.
임춘은 문장에 대한 뚜렷한 견해를 갖고 있었으니 “문장은 기(氣)가 주(主)가 되니 심중에 감동해 말로 표현한 것이므로 아름다운 문구로써 자랑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문장의 묘미를 음미한 후에 묘(妙)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임춘의 작문에서 주요한 것은 기질이나 개성으로, ‘기(氣)’를 강조하고 있다. 즉, 주기사상(主氣思想)을 문장론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임춘의 견해가 이러할진대 최자의 비평은 무색하리라 본다. 최자의 말처럼 남의 글이나 빼앗아 옮겨 적었다면 당시 문단을 뒤흔들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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