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204호 (2024년 여름호)
About this Book
총선 이후, 승리의 진짜 주체가 누구인지 곱씹게 되는 시기이다. 공천부터 선거운동까지 선거의 모든 과정에 열렬히 집중했던 유권자들이야말로 바로 그 승리의 주체라고 불릴 만하다. 본지 편집부주간 황정아는 그러한 주도권을 행사한 이들을 “누군가의 얌전한 ‘동료시민’이 아니라 흩어져 밝히다가도 때가 되면 무섭게 함께 타오르는 ‘촛불시민’”(「책머리에」)으로 호명한다. 그러나 이 정권은 여전히 패배를 실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소통이니 협치니 하는 그럴듯한 말, 영수회담이니 기자회견이니 하는 기만의 제스처로 촛불시민의 심판을 애써 지우려 한다. 분명한 것은 더이상 어떤 퇴행의 시도도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우리는 촛불시민의 잠재된 폭발력을 다시금 확인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조바심이 아니다. 심판의 결정에 응답하는 움직임, 촛불시민이 꿈꾸는 진정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낼 진득한 상상력이다.
『창작과비평』 2024년 여름호는 마침 상상과 특별히 연관이 깊은 ‘시’를 주제로 특집을 꾸린다. ‘오늘의 한국시, 이룬 것과 나아갈 길’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시가 일궈온 반짝이는 성취와 의미를 노동, 젠더, 역사 등 여러 측면에서 읽어낸다. 이번호에는 ‘기획 현장’을 마련하여 전지구적 핵심 현장이 된 팔레스타인 문제를 깊이 사유하고, 도덕적 자격을 시험받고 있는 서구의 현실을 밀도있게 살피는 글들을 소개한다. 한반도 역시 평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화’에서는 위기에 봉착한 남북관계를 점검하고 지속가능한 평화의 길을 모색한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이분법을 넘어 한국현대사의 역동성과 성취를 되짚는 글, 돌봄을 서비스나 권리가 아닌 정치적 기획으로 바라보는 글을 ‘논단’란에 담았다. 김중미 작가의 ‘내가 사는 곳’ 산문, 정우영 시인의 작가조명 인터뷰 및 새 계절의 시·소설 신작들은 독자들의 감각과 사유를 기분 좋게 자극할 것이다.
[특집] 오늘의 한국시, 이룬 것과 나아갈 길 --------------------------------------------------------
한국시의 다층적 계보를 통해 상상의 본모습이 갖는 힘을 일깨우는 특집 ‘오늘의 한국시, 이룬 것과 나아갈 길’에 네편의 글을 묶었다. 문학평론가 송종원은 ‘운명의 지침’을 돌릴 ‘님’으로 이끄는 시 본연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한편, 이론에 경도된 비평이 시에서 삶과 진실을 오히려 소거해온 경향을 지적하고 커먼즈로서의 한국시가 일군 성취를 세심하게 읽어낸다. 노동시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 문학평론가 소종민은 전태일의 글에 담긴 탁월한 시적 정신을 확인하는 데서 출발하여, 뜨겁게 주목받다가도 재차 ‘세계에서 추방당한’ 노동과 함께해온 한국 노동시의 역사와 의미, 그리고 여전한 사랑과 분투를 짚는다.
문학평론가 오연경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여성시가 젠더 규범을 때로 반복하고 때로 해체하며 유연한 발걸음으로 전진해왔음을 밝히고, 젠더가 삶의 본질적 교차성에 접근하는 유력한 방식임을 입증한 이 여성시들이 삶의 승리이자 미래의 자랑으로 기록되리라 예언한다. 시인 주민현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사로잡아 이끌었고 그리하여 그의 시의 DNA 어딘가에 별자리처럼 새겨진 숱한 한국시들을 정성스레 되짚으며 삶의 면면을 날카롭고 열렬하게 품어온 한국시의 다채로운 역량을 증언한다.
[기획 현장] 가자사태가 던지는 질문들 --------------------------------------------------------------
이번호 현장은 ‘가자사태가 던지는 질문들’이라는 제목으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과 관련된 알베르또 또스까노와 프레데리끄 로르동의 글과 번역자 한기욱의 해제로 이루어진 기획 특집으로 구성했다. 전지구적 핵심 현장이 된 팔레스타인은 우리에게 오랜 고난과 처절한 저항의 땅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 때문에 정작 구체적인 사정은 소홀히 지나치는 경향도 있었다. 난제 중의 난제로 보이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풀기 위해 어떤 사유의 전환이 제안되고 있는지, 그리고 이 문제가 어째서 서구문명의 ‘문명’으로서 자격을 결정적으로 시험하는지를 이해할 좋은 계기가 된다.
[대화] 위기의 남북관계, 지속가능한 평화를 찾아서 ------------------------------------------------
‘위기의 남북관계, 지속가능한 평화를 찾아서’를 주제로 문장렬 이승환 정욱식이 나눈 대화는 파탄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만큼 무너진 남북관계의 원인과 현황을 점검하고 개선책을 논의한다. 이 정권의 어리석은 외교정책과 분단체제 강화라는 시대착오적 발상은 수없이 지적되었음에도 새록새록 개탄스럽다.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심각하게 제기하는 입장이나 북한의 남북관계 방향전환 선언에 대한 다각도의 평가는 특히 주목할 대목이다. 정부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조건에서 가능한 현실적 방안까지 제시하는 이 대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떠올릴 때 유독 엄습하는 무기력을 떨칠 수 있다.
논단 ----------------------------------------------------------------------------------------------------
논단에는 ‘K-담론을 모색한다’ 연속기획 두번째 글을 싣는다. 뉴라이트 같은 보수 역사관이나 산업화와 민주화의 이분법에 포획되어온 한국현대사의 성취를 새롭게 조명하는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 홍석률의 글은 토지개혁과 고도성장에서 교육, 불평등, 평화에 이르는 현대사의 주요 면면에 담긴 적응과 도전의 역동성에 주목한다.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백영경은 어느덧 핵심 의제로 부상한 돌봄이 사회전환을 위한 정치적 기획으로 자리 잡는 데 어떤 논의와 실천이 수반되어야 하는지 세밀하게 살핀다. 돌봄을 권리로 접근하는 관점의 한계를 지적하는 대목과 커먼즈적인 방식의 제안이 무엇보다 인상적이다.
창작: 시ㆍ소설 ----------------------------------------------------------------------------------------
이번호 창작란도 감각과 사유를 새로이 일깨우는 작품들로 채워졌다. 강보원 김광규 김수우 박형준 성미정 송정원 엄원태 유희경 장철문 지연 한여진 황인숙 열두 시인의 정성 어린 신작 시편들을 기쁘게 전한다. 소설란 역시 공현진 구병모 안보윤 이미상 이장욱의 개성적인 신작 단편들로 다채롭게 꾸려졌다.
작가조명ㆍ문학평론ㆍ문학초점------------------------------------------------------------------------
작가조명에서는 최근 다섯번째 시집 『순한 먼지들의 책방』을 출간한 정우영 시인을 이설야 시인이 만났다. 집과 밥과 햇살에서 시간과 장소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의 온갖 근본들을 품어 시적 순간으로 되살리는 그의 작품이 먼지처럼 순하게 경계를 넘어 가장 멀리까지 이르는 노정을 여실히 전한다. 김다솔의 문학평론은 데이터 기술의 무분별한 발전을 부추기면서 스스로 불가피한 미래임을 자처하는 감시자본주의에 맞선 문학적 분투를 박문영과 정지돈의 소설에서 확인한다. 여러 장르의 신작들을 진솔한 논평과 함께 만나는 문학초점란에서 황규관 시인이 강우근과 이명윤의 시집을, 양재훈 문학평론가가 정태언과 성혜령의 소설집을, 그리고 최진석 문학평론가가 조대한과 박동억의 평론집을 다룬다.
산문ㆍ촌평 --------------------------------------------------------------------------------------------
호를 거듭하며 더 큰 기대를 받고 있는 산문 연재 ‘내가 사는 곳’은 이번에 김중미 작가의 인천 강화로 향한다. 마을공동체와 생태환경과 역사를 아우르는 작가의 속 깊은 시선을 통해 ‘산으로 들어가는 문’에서의 삶이 생생히 살아난다. 촌평란에는 언어학자 김수경을 조명한 책부터 한국 고전문학과 커먼즈, 뇌과학 및 물리학, 캐나다 오일샌드를 다룬 자전적 그래픽 노블까지 분야와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신간을 소개한다. 간명하고도 세심한 통찰을 담은 글들로 풍성하다.
창작과비평 2024년 여름호(204호)
▶목차
책머리에
비판이 아니라 심판이다 / 황정아
특집_오늘의 한국시, 이룬 것과 나아갈 길
송종원 / 되찾은 ‘님’의 시간: 커먼즈로서의 한국시와 시비평
소종민 /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노동시의 과거와 현재
오연경 / 전진하는 시: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의 여성시
주민현 / 우리가 기억하는 시, 시가 기억하는 우리
시
강보원 / 의인화되지 않은 나무나 돌에게 하고 싶은 말 외
김광규 / 청옥잠문벽(靑玉蠶紋壁) 외
김수우 / 최전선 외
박형준 / 언덕 위 재개발지역 외
성미정 / drink me 외
송정원 / 여름, 여름 아이 외
엄원태 / 이 동물원을 위하여 8 외
유희경 / 대화 외
장철문 / 식당 칸은 없다 외
지연 / 음계(陰界) 외
한여진 / 사운드트랙 외
황인숙 / 맑은 날 외
소설
공현진 / 선자씨의 기적의 공부법
구병모 / 엄마의 완성
안보윤 / 그날의 정모
이미상 / 옮겨붙은 소망
이장욱 /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기획 현장_가자사태가 던지는 질문들
알베르또 또스까노 / 오슬로 해체하기 (한기욱 옮김)
프레데리끄 로르동 / 순수의 종말 (한기욱 옮김)
해제 한기욱 / 팔레스타인 문제 해법과 서구의 문명적 파탄
대화
문장렬 이승환 정욱식 / 위기의 남북관계, 지속가능한 평화를 찾아서
논단
홍석률 / K-현대사의 성취와 역동성 (K–담론을 모색한다 2)
백영경 / 돌봄이 정치적 기획이 되려면
작가조명
정우영 시집 『순한 먼지들의 책방』
이설야 / 세상을 향한 순한 먼지들의 노래
문학평론
김다솔 / 불가피한 미래란 없다: 박문영과 정지돈의 최근 소설
산문
김중미 / 나는 ‘산문’에 살아요 (내가 사는 곳 10)
문학초점
황규관 / 구체적인 사물의 세계에서 ‘없는 사람’에 감응하기
양재훈 / 막다른 골목에 처한 소설의 표정
최진석 / 비평, 또는 반복과 번복 사이의 대화
촌평
최원식 / 이타가키 류타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
김성희 / 케이트 비턴 『오리들』
최현 / 강명관 『이타와 시여』
전종욱 / 김용옥 『도올 주역 계사전』
오경환 / 김인수·이영진 『사회조사와 한국적인 것의 탄생』
주재형 / 크리스토프 코흐 『생명 그 자체의 감각』
이관수 / 수지 시히 『세상 모든 것의 물질』
장준영 / 이유경 『로힝야 제노사이드』
황희두 / 최강욱 외 『도취된 권력, 타락한 정의』
최말순 / 천쓰홍 『귀신들의 땅』
창비의 새책
독자의 목소리
Source: View Book on Google 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