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쓰는 일
About this Book
상실의 무늬를 안고 분투하는 일상,
치열한 글쓰기로 살아남아 치유를 증언하다
엄마의 죽음을 오래 준비해 왔다. 늙고 병든 몸의 고통에 갇힌 엄마의 빛나는 영혼이 안타까웠다. 엄마의 영혼을 낡은 몸에서 해방시켜 달라고도 기도했다. 그런데 막상 엄마가 떠난 시간은 예상과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아무리 많은 죽음으로 연습한다 해도 엄마를 잃는 것은 정말 낯선 슬픔이었다.
“엄마에 대해 한마디 묻지도 않으면서 무심히 돌아가는 세상이 서럽다. 엄마가 죽었는데 개나리가 피고, 만개한 목련이 달빛에 아름답다니. 엄마가 존재했었다는 것, 그리고 사라졌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엄마에게 미안하다.”
그래서 저자는 그 막막하고 혼란스러운 시간을 살아 내기 위해 글을 썼다. 미안함을 달래고자, 그리움에 압사하지 않으려고, 부재하는 엄마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아니 그냥 쓰기라도 해야 살 수 있어서 썼다. 엄마의 장례식과 엄마의 삶에 대해, 사랑하고 미워하며 맺었던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 썼다. 상실의 슬픔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일상, 엄마 없이 맞이하는 낯선 하루하루의 적나라한 분투를 치열하게 썼다.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정상성에 대한 강박 없이, 뼛속 어딘가에서 흘러나온 것 같은 이른바 ‘미친년 글쓰기’를 실행했다. 글을 쓰고 나니 비로소 조금 살 것 같았다.
하나의 슬픔을 다른 슬픔에 잇대는
마침표 없는 애도의 여정
글쓰기의 시작은 스스로 숨을 쉬기 위한 몸부림이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글의 독자로 앞세우게 된 존재들이 생겨났다. 부모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일상으로 돌아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실은 저도 그랬어요….” “더 슬퍼하고 애도했어야 했는데, 나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뒤늦게 감정이 올라와요….” 저자의 블로그에 연재되던 애도 일기를 읽은 이들의 이러한 ‘인공호흡’ 같은 공감과 슬픔의 연대 속에, 저자는 어느새 자신의 슬픔에서 한발 빠져나와 다른 애도하는 이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부모 잃은 사람인데, 쓸 수 있는 내가 써야겠다. 부모를 잃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고, 그렇게 쉽게 아무렇지 않게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고. 빨리 정상화되지 않았어도 된다고, 이제라도 얼어붙은 감정 몇 조각 녹여 내는 것이 좋다고 떠벌이고 싶다. 내 안에 아직 다 울지 못한 어린아이에게 충분히 시간을 주고 허용해 주며 나와 연결된 당신에게도 그러자 하고 싶다.”
누구나 죽음을 겪지만, 모두가 죽음 앞에서 어쩔 줄 모른다. ‘천국 갔으니 괜찮다’는 식의 피상적이고 종교적인 언어,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이제 그만 슬퍼하라’는 무심한 말들 속에 충분히 슬퍼하지 못한다. 그러나 저자는 애도가 “끝이 없는 것, 위로할 수 없는 것, 화해할 수 없는 것”이라는 자크 데리다의 말을 빌려, 결코 끝나지 않을 애도의 여정을 앞장서서 걸어간다. 그리고 읽는 이에게도 함께하자고 손을 내민다.
상실의 늪에서 건져 올린 오늘,
함께 울고 함께 나아가는 치유에의 초대
『슬픔을 쓰는 일』이라는 제목처럼, 상실이 할퀸 슬픔과 고통을 글로써 절절히 쏟아 놓은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애도 일기이기도 하지만 읽는 이를 치유하는 글쓰기로 안내하는 초대장이기도 하다. 자신의 삶과 경험을 통과하며 애도에 관한 책들을 읽고, 생생한 언어로 고통의 시간을 치열하게 기록했을 뿐 아니라 끝내 이 상처의 기록을 책으로 내놓으면서, 저자는 자신의 글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마음에 다가가 온전히 슬퍼하고 다시 살아 낼 힘을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저자의 바람대로, 또한 이 글을 먼저 읽고 추천사를 쓴 이들의 다음과 같은 증언처럼, 이 애도 일기가 상실의 늪에서 오늘을 새롭게 바라보고, 그 속에서 작은 희망이라도 건져 올리게 하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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