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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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년 뒤에 내가 결혼할 여자가 없고 너도 혼자면 결혼하자.” “그럴 일 없을 거예요.” 청미의 사장, 부사장의 2세로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은아와 석호. 지겹던 마지막 맞선자리에서 서로를 마주하고 농담같은 약속을 건네고 3년 후 다시 돌아온 석호는 은아를 찾지만…… “싫어! 저리가요……. 제발 나를…… 나를 좀…….” ‘3년 동안 너에게 무슨 일이 생겼던거니?’ 어둠속에 웅크린 그녀를 내버려 둘 수 없는 석호의 제안. “너, 나하고 살자.” 먼 길을 돌아 가족에게 돌아가는 은아의 홀로서기. [본문 내용 중에서] “싫어! 저리가요……. 제발 나를…… 나를 좀…….”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다 쉰 목소리에는 소리를 지르는 것에도 지친 기색이 묻어났다. 그러다 벽에 기댄 작은 몸이 스르륵 쓰러졌을 때, 이때도 선뜻 달려드는 사람들은 없었다. 불과 십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여자가 보여준 모습은 술에 어느 정도 취한 사람들의 술기운을 단숨에 날려버리고도 남을 만큼 충격적인 것이었다. 석호는 그 광경들을 어이없이 바라보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는 어쩌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구두도 벗지 않은 채 방 안으로 달려 들어가 여자 앞에 앉았다. 벽 아래 축 늘어진 여자와 사람들을 번갈아 보며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 한 명을 지목해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몰라. 그냥 여기 김 씨가 오늘 좀 술이 과해 미스 정 엉덩이 한번 손댔을 뿐인데 저 난리를 피운 거야. 나이 든 사람 술 마시면 다 그렇지. 근데 댁은 누구요? 미스 정 아는 사람이요?” “당신이 김 씨입니까?” 사정을 말한 사람 옆으로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덩치 큰 노년의 남자를 향해 물었다. “그렇소이다. 댁은 누구슈?” 사태의 주범이라 할 수 있음에도 뻣뻣한 남자를 석호는 단숨에 들어 올려 바닥으로 내리 꽂았다. 원체 큰 덩치라 바닥에 즐비한 식탁들이 부서지고 음식들과 식기들이 같이 공중으로 튀어 오르다 엎어졌다. 요란한 소리에도 정신을 잃은 여자는 눈을 뜨지 않고 있었고, 식당 방 안에 있는 남자들은 놀라 허겁지겁 그곳을 빠져나갔다. “세상이 어느 땐데 여자를 희롱하셨습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경찰에 신고해드릴까요?” 내리 꽂혀진 남자를 비롯해 일행이라 그래도 몰려있었던 남자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하며 방 안을 나가려 하는데 식당 주인이 들어와 급히 방문을 닫았다. “아니 이게 무슨 난리래! 이거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장사 망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러게 회사 경리는 왜 데리고들 오는 거야? 안 오겠다는 사람 억지로 데려와서 이 사단을 내네 결국. 어이, 형씨. 저 아가씨랑은 무슨 사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건 영업 방해요.” 석호는 상의에서 지갑을 꺼내 수표 몇 장과 명함을 식당주인에게 건네주었다. “이걸로 부족하면 회사로 연락하십시오.” 잠깐의 소란 속에 잊힌 여자를 석호는 번쩍 안아들었다. 산발이 된 머리가 아래로 향하면서 하얗고 자그마한 얼굴이 드러났다. 창백하기 그지없는 얼굴에는 정신을 잃은 지금 순간에도 두려움이 가득했다. 사람들을 지나 석호가 식당을 나가자 사람들은 식당주인이 든 명함에 서로들 몰려들었다. 주식회사 청미 부사장 윤석호라 되어 있는 명함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까. 전국에 가장 많은 대형 할인마트를 가지고 있는 청미의 부사장이 준 명함과 수표 몇 장은 과히 비교도 될 수 없다는 걸 깨닫는 것은 물론이고, 경리라고는 하나 그저 얼마 안 되는 입출금 장부를 적고 전화 받는 것이 다면서, 놀러오는 손님들 커피나 타주고 청소하는 미스 정의 정체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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