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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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이상〉
“사정이 있어요, 할머니가 많이 아파요.” 그래서 그 집이 필요했다. 등나무 꽃이 길게 늘어져 있고 연둣빛 새순이 골짜기마다 피어난 푸른 차밭이 내려다보이는 고택. 순애가 평생을 일군 차밭은 잃었지만 마지막 안식처가 될 옛집만은 되찾아 주고 싶었다. 그런데 왜 이 남자가 여기에 있는 걸까. “그래, 딱하네.” 조각상처럼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서밤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런데 나도 있어, 그 사정.” “…….” “골프장 지을 거야, 거기다.” 모두에게 매너 좋은 재벌 3세와 어디에도 드러나선 안 되는 정치인의 사생아. 우린 서로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그는 나를 경멸했다. 영원히 닿을 수 없는 평행세계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오길 결심했을 때, 우리의 인연도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 하찮은 인연이 이렇게 얽혀버릴 줄도 모르고. “원하는 걸 말해요.” “네가 줄 수는 있고?” “못 줄 것도 없죠. 지금은 융통성이 생겼거든요, 옛날과 다르게.” “글쎄, 송낙원이 나한테 줄 수 있는 거라.” 서늘한 손이 낙원의 뺨을 쥐었다. 살갗을 벌리고 붉고 축축한 입안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나른한 눈동자에 선연하게 떠올라 있는 건 욕망이었다.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오늘은 바쁘잖아요, 그러니까 다음에….” “바빠. 그런데 네가 놀아 달라고 하면 그래줄까 하는데.” “…….” “오늘만, 특별히.” 오늘만. 그건 두 번의 기회는 없다는 의미였다. 흔들리는 낙원의 눈동자를 보며 서밤이 싱긋 웃었다. “놀아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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