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은 어리석을수록 좋다 - 수업론, 난관을 돌파하는 몸과 마음의 자세 : 아우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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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은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다음 세대가 묻다 '무언가를 배울 때는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가요?' 우치다 타츠루가 답하다 '무지란, 변화를 방해하는 힘입니다. 내일을 걱정하지 말고 어제에 안주하지마세요. 지켜야 할 나를 버릴 때 천하무적이 됩니다.' [수업修業] : 기술이나 학업을 익히고 닦는 것. 또는 무엇을 배울지 모르는 상태에서, 무엇을 가르쳐 줄지 모르는 사람에게, 무엇인지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 각계 명사에게 ‘다음 세대에 꼭 전하고 싶은 한 가지’가 무엇인지 묻고 그에 관한 응답을 담는 ‘아우름 시리즈’의 다섯 번째 주제는 ‘수업(修業)’이다. 젊은 시절 반항적이고 공격적인 데다 제법 달변이었던 저자는 누구든 개의치 않고 덤벼들었는데, 마음 한편엔 누군가 자신의 폭주를 멈춰주었으면 하는 불안감이 늘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서유기》의 주인공인 난폭한 손오공은 삼장법사를 만나 머리에 ‘금고아’라는 금속 띠를 두르게 되는데, 20대이던 저자에게는 자신의 머리에 금고아를 채워줄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했다는 이야기로 수업론(修業論)은 시작된다. 수업(修業)의 사전적 의미는 ‘기술이나 학업을 익히고 닦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수업이란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배울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시점에, 무엇을 가르쳐 줄지 좀처럼 알 수 없는 사람 밑에서, 무언지 알 수 없는 것을 배우는’ 이상한 구조를 지닌다. 이것을 ‘개방적이고 역동적’이라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라 받아들이는가로 사람은 ‘수업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갈린다. 요즘같이 배움과 노력도 약삭빠른 거래의 대상이 되는 세상에서 저자는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하는’ 수업, ‘자아를 버리는’ 수업, ‘우열 경쟁을 다투지 않는’ 수업 등 비경제적이고 반시대적인 수업론을 제시한다. 그가 말하는 수업이란 대체 무엇이며 왜 필요한 것일까? 시장과 상품밖에 모르는 아이들아, 노력도 거래로 여기는 아이들아, 닥치고 잠자코 수업하자 일본의 철학자, 교육자이자 합기도 무도인이기도 한 저자는 그와 같은 수업 태도가 인생을 길고 넓고 길게 보았을 때 결국 ‘생존의 가능성’을 높인다고 말한다. 생존에 유리한가 그렇지 않는가는 무도인인 저자에게 중요한 기준이다. 여기서 생존이란 나 개인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의 생존, 나아가 세계의 존속까지 포함한다. 이 책에서는 무도, 명상, 신앙의 세 분야로 나누어 수업의 필요성을 다양한 각도로 살펴본다. 무도(無道)의 최종 목표는 ‘무적(無敵)’이 되는 것인데, 무적이란 세상 모든 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나’를 버림으로써 달성할 수 있는 경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함과 무지(無知)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한데, 무지란 지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쓸모없는 지식으로 가득 찬 상태를 말하며, 우리가 변화하려는 것을 방해하는 힘이다. 수업이란 바로 ‘나’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천하무적이 되는 여정인 것이다. 무도인의 입장에서 본 명상이란, ‘액자 선택’의 기법이다. 사람은 세상을 인식할 때 일종의 액자를 필요로 하는데, 때와 상황에 맞는 적절한 액자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명상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능력’을 길러주는 수업으로, 그러한 수업을 통해 ‘지금 여기 나’에 얽매이지 않고 적절한 액자를 선택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자신이 아닌 자가 되는 능력, 타자에 빙의하는 능력이 무엇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말한다. 무도인이 본 신앙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기다리는 마음, 희미한 신호를 감지하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신앙이든 그 외의 큰 신념이든 살아 있는 사람의 몸을 통해서 실천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저자가 연구해온 프랑스 유대인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사상을 살펴보면, 사회가 충분히 정의로우면서도 온화한 감촉을 갖기 위해서는 인간의 살아 있는 몸뚱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도도 명상도 신앙도 그에게는 결국 ‘살아가는 힘과 지혜’를 키우기 위한 바탕이다. 반대로 살아가는 힘을 약화시키는 것은 무지, 안주, 미래에 대한 예견, 고정관념 등 나라는 감옥에 갇혀 사는 것이다. 즉 수업(修業)이란, 무지를 벗고 난관을 돌파해 성숙에 이르는 여정인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무도인의 난관 돌파법 주목할 만한 점은 무도인답게, 정신론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무도는 말할 것도 없고 명상도 신앙도 살아 숨 쉬는 육체에서 꽃피는 것이며 성숙도 철저하게 신체적인 경험이라는 것. 그렇다고 육체적 강함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심장질환을 앓아 또래 친구들처럼 마음껏 뛰놀 수 없었던 저자는 오히려 ‘약함’이 자신의 전문분야라고 말하며 약함에 대해 연구한 바를 설파한다. 또한 생활이 끝나지 않으면 수업도 끝나지 않는다며 일상생활이 수련이고 수행인 듯이 살라고 권한다. 어차피 수업이란 삶의 현장에서 치러야 할 장거리달리기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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