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의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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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나를 따라 해라. 나는 당신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나는 당신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전하.” “훗, 과연 영리하구나. 좋아, 이로써 넌 내 곁을 영원히 떠날 수 없어. 죽을 때까지 말이다.” 운명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18세기 러시아. 그곳에서 새로운 개혁을 꿈꾸는 유리 알렉세예비치 돌고루키 공작은 끝없는 정적들의 위협과 모함 속에서 차디찬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한편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성(性)마저 바꾼 채 남자 노예로 살아가는 길을 택한 지혜는 지독히도 차가운 유리의 옆에서 그의 본모습을 알게 되며 점점 빠져들게 되고 유리 역시 동성의 남자 노예에게 빠져드는 자신으로 인해 괴로워하게 되는데…… 남자 대 남자, 주인과 노예. 유리와 지혜의 관계는 과연 이 울타리를 넘어설 수 있을까? 본문 내용 中에서 정말 돌아 버리겠군. 유리는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극한까지 치달았는지 깨닫고 등골이 오싹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지혜의 입술을 살짝 건드리고 있었다. 동성애에 대한 별다른 생각은 없었지만 막상 자신이 그런 성향이 있다고 생각하니 주체할 수 없는 혐오감이 온몸을 휩쌌다. 그러나 내친김이었다. 한 번 끝까지 가보자 하는 악마적인 속삭임이 뇌리를 지배했다. “전하, 대체 왜 그러시는지……웁.” 순간 지혜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숨을 멈췄다. 꿈이라면 수백 수천 번도 더 꾸었지만 현실에서는 한 번도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 현실로 일어났다. 유리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 위에 머물며 거칠게 침입을 시도하고 있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있는 새 부드럽고 물컹한 이물질이 잇몸을 더듬는 것을 알았다. 등줄기를 연달아 치솟는 소름에 지혜는 몸부림치며 반항하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아니 사실은 절대로 그 품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영원히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 품안에 안겨 다시는 깨지 않을 꿈을 계속 꾸고 싶었다. 실크로 된 양파처럼 한 겹 한 겹 매끄러운 껍질을 벗겨갈 때마다 또 다른 신천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도저히 이 세상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고 달콤한 입안의 감촉에 유리는 생전 처음 자제심이 바닥나는 것을 느꼈다. 어릴 때부터 무수히 많은 암살의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이토록 극한까지 다다른 위기의식을 느낀 적은 없었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위험한 줄 알면서도 그 경고를 점차 무시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어느새 입맞춤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욕망이 다른 부위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천천히 가녀린 목줄기를 따라 내려가던 손이 옷깃을 제치고 그 속의 보드랍고 매끈한 살결을 어루만졌다. 손가락 끝이 녹아버릴 것 같은 달콤함을 만끽하는데 돌연 지혜의 손이 강하게 제지했다. 뿌리치려면 충분히 할 수 있었지만 마치 빙산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신이 들면서 자신이 한 일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깨달았지만 이미 뒤늦은 다음이었다. 금단의 욕망이 치러야 할 대가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당황스러움과 미안함을 감추기 위해 유리는 그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내뱉었다. “이만하면 키스를 잘 하는 편인가? 어때, 신부에게 이런 일로 불평을 들을 일은 없겠지?” “예? 아, 예. 전하께서는……뭐든 잘 하시니까요.” 씁쓸함이 완전히 감춰지지 않은 대답에 유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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