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에 아씨와

봄밤에 아씨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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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문밖을 엿보니 웃통을 벗은 만선이 저고리를 손에 든 채 마당을 서성이고 있었다. 아니 빠른 걸음으로 마당을 빙빙 돌고 있었다. 달빛이 그의 튼실한 몸을 비추었고 젖은 머리의 물기가 검푸르게 반짝거렸다. 만선도 그녀만큼 주저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눈물과 함께 잔기침이 터졌다. 그제야 마당을 돌던 만선이 멈칫하더니 날 듯이 방 앞으로 다가왔다. “아, 아씨, 만선입니다. 많이…… 아프십니까?” 그에게 무슨 말을 하랴. 방문을 열면 두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나랏법으로 양인 부녀자와 천인의 혼인은 엄격히 금한다. 어길시엔 예외없이 목숨을 거두었다. 특히 천인사내는 살아날 길이 없었다. ‘내 음란한 욕망으로 만선의 목숨까지 버리게 할 작정인가?’ 세란은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삼켰다. 그녀에게 그럴 권리는 없었다. 문을 사이에 두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만선이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달그락. 그가 문고리를 잡았다. “들어와.” 만선이 방문을 열 때 세란은 눈을 감았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다. 음녀라 낙인찍히고 돌팔매질을 당하고 참형을 당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모든 걸 잃는다 해도 이 순간 만선을 원했다. 방에 들어와 그녀 앞에 웅크린 만선의 눈이 어둠 속에 굶주린 맹수 같았다. “춥구나.” 만선이 두터운 이불처럼 세란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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