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너희 세상에도
About this Book
SF, 호러, 성장 소설, 환상 소설… 분야를 종횡하며 감동을 안겨준 이야기꾼, 남유하 작가의 통렬한 호러SF 소설집 곧 다가올 미래 디스토피아를 예언한 듯 통찰이 빛나는 『다이웰 주식회사』, 일상의 순간에 그로테스크한 지점을 탁월하게 포착한 『양꼬치의 기쁨』 에 이어 남유하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 『부디 너희 세상에도』가 출간되었다. 일찍이 공포 문학의 거장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는 ‘이성이 모든 경이의 근원을 해소’한다고 해도 남아 있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 관한 이야기를 훌륭한 호러 문학으로 규정한 바 있다. 그 진가는 ‘비범한 부분에서 끌어올리는 감정의 수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문명으로 포장된 현대 사회의 규율과 법칙을 벗겨냈을 때, 원초적 기괴한 풍경을 포착한 문학이 진정한 호러 문학이라고 본 셈이다. 『부디 너희 세상에도』는 이성이라는 근대화된 시각으로는 해소할 수 없는 미지의 감정과 도시를 지배하는 질서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소설집이다. 소설집에 실린 대부분의 단편은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초현실적 재앙을 중심 삼는다. 각 서사는 재앙적 풍경을 통해 현대인이 뿌리 박고 있는 공동체 법칙이 어떻게 구성원들을 위협할 수 있는지, 그 법칙을 내면화한 인간들이 보여주는 행동이 얼마나 모순적인지. 기존의 지배 질서가 얼마나 손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인지를 날 것으로 드러낸다. 이 책을 펼치는 독자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 배어 나오는 심원한 어둠을 통과하며, 그야말로 마음속에서 비범한 공포의 감정을 끌어내는 체험을 할 것이다. 의문의 재앙이 가져다준 현대 사회의 민낯 우리는 우리가 어찌할 줄 모르는 재앙이 다가올 때, 어떻게 행동할 수 있을까? 재앙이 닥쳐도 우리가 기본적으로 ‘믿는 것’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 소설집은 본능적이고 자연적이라고 믿었던 질서를 해체하여. 실은 문명이 만들어낸 질서 아래 감춰진 민낯을 드러낸다. 불치병 환자의 안락사가 합법적으로 허가된 사회에서, 심지어 안락사를 시켜줄 돈이 없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버려지는 노인이 등장(「반짝이는 것」)한다. 문명의 규범이 물적 이익으로 대체되자, 가족 간의 도리 역시 대체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노인 부양을 비롯한 돌봄 문제를 무조건 가족의 사랑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단순한 결론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남을 살해하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 속, 엄마와 남편을 향해 두려움을 느끼다 파국에 이르는 한 가정(「목소리」)의 모습이 그렇다. 가족 간의 유대는 자연발생적인 게 아니며, 가족중심주의라는 약속이 얼마나 무너지기 쉽고 얄팍한 규범인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어쩌면 남유하 작가는 자신만의 “무지의 베일”을 씌우는 서사적 실험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모든 인위적 약속이 제거됐을 때, ‘진정한 신뢰’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소설집은 데스 게임의 현장이 된 교실 이야기(「이름 먹는 괴물」)로 서로를 향한 의심과 믿음을 시험해보기도 하고, 현대인이 의존하는 도구가 하루아침에 불안의 대상이 된(「화면 공포증」) 풍경을 그리기도 한다. 합리적인 인간들의 비합리적 모순들 문명의 체계 아래 숨겨진 꿈틀거리는 욕망 현대 사회의 질서는 ‘합리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집은 그 기반 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단순히 합리성으로만 포장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답이 있는 삶’을 찾아 헤매던 에이가 자신만이 소유할 수 있는 존재를 찾기 위해 연쇄살인마로 변해가는 과정(「에이의 숟가락」)이 대표적으로 그렇다. 피 묻은 에이의 숟가락은 마치 사회적 규율이 억지로 내리누르고 있는, 끓어오르는 욕망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어쩌면 에이라는 신종 인간의 출현은, 반대로 답이 있는 합리적 완결성만 추구하는 우리 사회의 질서가 만들어낸 존재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지향점은 다른 소설에서 더 드러나는데, 본인이 가질 수 없다는 이유로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다는 나무를 파괴해버리는 독재자(「 뇌의 나무」)의 모습은 소유욕이 가져다주는 비틀린 결과가 무얼 초래하는지 알려주기도 한다. 잘못된 선택을 거듭하다가 스스로를 재앙적 상황에 몰아넣고 마는 남자의 이야기(「미래를 기억하는 남자」)는 남성적 욕망의 모순점을 확고히 겨냥하고 있다. 남자가 겪고 마는 지옥은, 처음부터 선택을 잘못한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널리 퍼진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사고의 근간부터 잘못된 것임을 지적한다. 호러 문학의 새로운 면모들 이 단편집은 내러티브와 장르 형식상으로도 유의미한 지점을 보유하고 있다. 메타픽션적 실험, 좀비 바이러스에 대한 재해석과 응용, 헐리우드식 스릴러의 클리셰에서 벗어난 연쇄살인마 이야기, 현대 문명의 기기를 코스믹 호러 속 미지의 존재로 바꿔놓는 방식, 한국적 디스토피아의 풍경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미 모든 SF와 호러 콘텐츠를 봤다고 자부 독자, 호러와 SF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 전부 만족할 독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줄거리반짝이는 것 ‘좀비 바이러스’라 불린 ACAS 바이러스. 사실 좀비 바이러스가 아니라 겉모습을 흉하게 만들고 언어 기능을 쇠퇴시키는 바이러스다. 바이러스가 창궐한 지 수년 후. 노인 ‘일규’는 해당 바이러스에 걸려 며느리와 아들, 손녀에게 의지하면서 살아가는데…. 어느 날 눈을 떠보니 감염자들이 가장 많이 버려진다던 한강 다리 근교다. 가족들에게 버려진 것이다. 일규는 감염자를 대상으로 무료 안락사를 시켜준다던 ‘다이웰 주식회사’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에이의 숟가락 평생 ‘자신만의 것’을 가지고 싶었던 에이. 어느 날 그녀만의 숟가락을 발견하고, 숟가락을 날카롭게 갈아 보관한다. 그리고 자신의 가장 아끼던 강아지를 죽인 오빠를 숟가락으로 찔러 살해한다. 그로부터 시작되는 에이와 숟가락의 연쇄살인 일대기. 뇌의 나무 거대한 뇌가 달린 2미터 높이의 나무. 사람들은 이 나무와 소통하며 지혜를 얻는다. 어느 날 한 독재자가 이 나무를 독차지하고자 결심하며 비극이 시작된다. 화면 공포증 화면을 보면 불쾌감이 든다는 ‘화면 공포증’. 이 화면 공포증이 전염병처럼 퍼지기 시작한다. 이 증상에 걸린 사람은 종국에 화면 너머로 가기 위해 스크린에 머리를 부딪다 죽게 된다는데. 괴담인지 진짜일지 모를 이 공포증에 의해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그런데 ‘나’의 주변에서 실제로 이 같은 현상을 벌어지고, ‘나’조차도 이 증상에 걸린 거 같다. 미래를 기억하는 남자 어느 날부터 느껴지기 시작한 기시감. 남자는 이것이 미래로부터 온 메시지라고 단정 짓고, 기시감에 따라 선택을 내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남자의 판단은 점차 이상한 데로 흐르고 마는데. 이름 먹는 괴물 우리 학교 교탁에 나타난 벌레. 누군가 그 벌레를 만지지마자 거대하고 끈끈한 막이 되어 잡아먹힌다. 바깥은 나가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어둠으로 잠식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깨닫는다. 저 괴물이 우리의 ‘이름’을 노리고 있다는 걸. 목소리 타인을 죽이라고 명령하는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들리기 시작한다. 명령을 듣지 않은 자는 수십 시간 내로 죽게 된다. 여느 때처럼 나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 엄마와 저녁 식사를 한다. 그런데 엄마가 이제 갓난아기에 불과한 내 딸을 자꾸만 쳐다본다. 부디 너희 세상에도 소설가인 ‘나’는 주변인을 관찰하며 소재를 얻고자 한다. 습관처럼 목욕탕에 간 ‘나’는 따뜻한 욕실에서 소설을 구상하려 한다. 그때 누군가 구토를 하며 들어오는데. 구토하던 환자가 목욕탕의 사람들을 공격한다! 목욕탕에서 일어난 좀비 사태가 한창일 때, ‘나’는 현실 세계와 유리된 누군가가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라는 걸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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