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판사판 역사판
About this Book
알라딘이 등잔을 닦으면 지니가 나타나듯이, 거울을 닦으면 대발과 발바리가 나타난다. 온세상은 그들에게 손가락을 보여준다. 그들도 그를 향해 손가락을 보여준다. 셋은 일지선 놀이에 푹 빠져 생각을 쉰다. 가끔 일지선의 변형도 곁들인다. 남이 보면 욕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동작이지만, 그들은 빙긋이 웃는다. 그저 웃어넘긴다. 손가락을 보여주는 행위의 선악을 분별하지 않는다. 더욱이 웃는 행위에는 선악이 없다. 울어도 좋지만, 웃는 것이 자연스럽다. 울 때보다 웃을 때 근육이 덜 피로하기 때문에 ‘웃는 놈’이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놈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일지선 놀이에 빠진 세 놈을 우연히 본 사람들이 흉내 내면서 일지선이 널리 퍼졌다. 형식이 화려하게 발달하면서 내용도 함께 발달했다. 사람들이 점차 일지선 놀이의 장점을 알게 되면서 슬기로운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도 널리 권장했다. 놀이에 입문하는 순서가 반드시 깨닫는 순서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이다. 온세상·대발·발바리 중 하나가 발명한 놀이가 분명하지만, 그들보다 늦게 놀이에 빠진 사람들 가운데 셋보다 먼저 자성을 찾아 생로병사의 고뇌를 끊고 항상 행복한 사람이 늘어나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 놀이인가. (중략) 요즘 사람들은 손가락을 들어 보이면서 노래한다. “저 언덕에 갔다더니, 어째서 왔느냐? 나를 데려다주러 왔느냐?” 듣는 사람이 화답한다. “생사와 열반이 어우러졌더라. 이사명연무분별理事冥然無分別이니 이판사판역사판理判事判歷史判이로세.”
- 「발문」 중에서
◆ 진실·사실·팩트가 뒤섞이고 과거·현재·미래가 자유롭게 녹아든 독특한 에세이
『이판사판역사판』은 프랑스 사학자 주명철 한국교원대 명예교수가 2015년부터 2020년에 걸쳐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시리즈라는 대작을 펴낸 이후 지나온 삶을 성찰, 회고하면서 신명나게 써내려간 에세이다. ‘이판사판’은 조선시대에 생겨난 불교 용어로 교리공부와 참선에 힘쓰는 ‘이판승’과 절의 살림을 맡아보는 ‘사판승’을 아울러 이르며 막다른 지경에 이른 상황을 비유하는 말이다. 여기에다 한국전쟁기에 태어나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에 청춘을 보낸 후 30여 년간 수많은 역사교사를 양성해온 저자의 폭넓고 깊이 있는 직간접 체험이 녹아든 ‘역사판’을 덧붙여 탄생한 제목이 바로 ‘이판사판역사판’이다. 한편 부제에 들어가 있는 ‘일지선 놀이’ 역시 예로부터 선승들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이는 단순한 행위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것에 착안해서 책의 주인공들이 개발한 놀이를 지칭한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허상)에 집착하지 말고 본질인 달(진상)을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기발한 놀이문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있다.
저자는 왜 이런 글을 쓰게 되었을까? 한평생 ‘사실’에 충실한 글만 써오느라 스스로에게는 물론 숱한 제자들에게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었던 한계에서 과감히 벗어나 그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글을 쓰고 싶었던 갈증 때문이다. 그 결과 이 책은 과거·현재·미래를 종횡무진 내달리면서 거침없는 몽상·환상·상상·회상·명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직조해낸 시대적·역사적 진실과 사실, 깨달음의 단편이 흡인력 있는 에피소드들 속에 녹아 있는, 소설 같기도 하고 회고록 같기도 한 에세이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일흔 넘은 노교수가 스스로를 ‘꼰대’라고 인정하면서도 젊은 세대의 독자들에게 절절하게 전하고픈 메시지들이 차고도 넘친다. 그렇다고 곳곳에 따분한 잔소리가 매복해 있을 거라고 지레짐작한다면 큰 오산이다. 저자가 지금까지 써온 글들과는 다른 결의 흥미로움이 가득하며 해학과 풍자, 진솔한 성찰의 격조 있는 즐거움 속에서 독서의 진짜 효용을 절감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 페르소나의, 페르소나에 의한, 페르소나를 위한 ‘방구석 여행기’
이 책의 7쪽에서 11쪽까지는 「머리말」이다. 그 「머리말」에 달린 제목은 “혼자 노는 방법을 찾아서”인데 맨 끝에는 “2021년 좋은 날 기다리며 / 온세상·대발·발발 쓰다”라는 문구가 달려 있다. ‘온세상·대발·발발이라고? 저자 주명철의 신작 에세이라며? 뭔가 좀 이상하네, 딴 건 몰라도 여느 에세이와는 분명히 다른데’라고 느낄 개연성이 초반부터 농후하다.
이 책의 주인공은 머리말에 분명히 나와 있듯 셋이다. 온세상 교수, 대발, 발발. ‘온교수’는 저자의 페르소나이며 대발과 발발은 온교수의 페르소나다. 대발은 궁극의 깨달음을 얻고자 선 수행에 정진하는 스님이며 그의 제자 발발은 두어 발자국 걸은 뒤에 반드시 뒤를 돌아보는 습성을 지닌 ‘발跋’이라는 동물을 닮으라는 의미로 그가 지어준 이름인데 대개는 ‘발바리’로 불린다. 그런데 저자는 왜 굳이 자신의 페르소나와 그 페르소나의 또 다른 페르소나를 내세웠을까? 무려 10권이나 되는 대작을 세상에 내놓고 나니 또다시 심심해진 차에 새로운 글감을 찾던 중 “어느 새벽에 이불 속에서 유튜브를 검색하다 종범스님의 법문을 듣게 되었고, 비몽사몽간에 스님이 ‘발跋’이라는 동물의 습성에 대해 하는 말씀을 듣고 이 책의 실마리를 찾았다”고 한다. 살아온 날들과 비례한 추억의 가지가 마구 뻗어나가기 시작했고 그 의식의 흐름이 저속하든 고급지든 상관없이 재미있게 따라가다 보니 현실과 꿈, 상상의 경계마저 흐릿해지는 경지에 이르렀다. 저자 자신의 체험과 지인들의 체험이 한데 어우러지고, 현실에서 겪었던 일들 중 일부는 웃음과 진지함이 넘치는 강의실 풍경과 옛 시절을 손에 잡힐 듯 묘사하는 한편, 어떤 이들과의 인연은 꿈의 형태로 증폭되어 주인공을 숨 막히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읽는 이는 함께 웃으면 그뿐,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저 이 독특한 주인공들이 전해주는 시대상과 역사적 사건에 대한 올바른 판단, 가치관, 숱한 체험, 인생에 대한 깨달음 등등을 접하며 세상을 보는 눈을 확장해가는 고차원의 즐거움을 느끼면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온갖 ‘잡념’과 더불어 노닐며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를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
◆ ‘온세상’ 교수는 누구인가?
주인공 온세상 교수는 꽤나 까칠한 인물이다. 원칙주의자이자 뼛속 깊이 민주주의자이기 때문에 제자들이 맞닥뜨린 안타까운 사정을 너그럽게 헤아려주기보다 원칙에 어긋났을 때는 가차 없이 ‘F’ 학점을 발사하는 쪽을 택한다. 이는 자신의 학과에 소속된 제자들도 예외가 없다. 한편 그동안 놀랄 정도로 근대화·민주화되었는데도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식민지 근성을 떨치지 못한 자들을 몹시 경멸하며, 무분별한 일본어투 남용이나 우리말의 잘못된 쓰임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또 불합리한 조치 앞에서는 위아래를 불문하고 이의를 제기해서 원칙대로 돌려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학생들의 답안지를 채점할 때는 늘 빨간 펜으로 신랄하게 지적을 해서 학생들을 주눅 들게 만든다. 외부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최대한 아껴 귀가하자마자 클래식을 듣는 그는 ‘붙박이장’이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그런 반면 온교수는 강의 준비를 하다 잠드는 것을 가장 행복하게 여기고 학생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전수할 때가 제일 기쁘다고 말할 만큼 강의에 온힘을 쏟으며 해마다 꼬박꼬박 논문을 써내는 성실한 학자다. 강의실에서는 학생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 유머를 최대한 활용하는 한편, 학생들이 반드시 깨쳐야 하는 진실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진지하게 열정적으로 설명한다. 원칙을 지키느라 제자들의 사정을 봐주지 못한 것이 내심 안타까워 자주 악몽을 꾸기도 하고 불행한 일을 당한 제자들을 떠올리며 절절하게 가슴 아파하는 따뜻한 인물이다. 정년퇴임 후에도 “늘 사실과 진실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개인의 경험을 되살려 타인의 경험을 재체험하고 공감하는 교육자가 되라고 분명히 말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스승이다. 그런 그가 제자들과 ‘착한 침입자’인 독자들에게 틈날 때마다 강조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신화를 깨야 역사가 산다”는 점과 근대화의 여러 성격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근대화를 산업화와 같은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근대화를 너무 잘못 알고 있다. 산업화와 함께 노동자의 인권과 삶의 질도 향상시켜서 민주주의를 확실히 정착시킬 때 근대화를 이뤘다고 평가할 수 있다.” (36쪽)
“중세에서 근대로 나아가는 문화적 변화과정을 요약하면, 정교분리·산업화·합리주의·민주주의 발전을 근대화의 중요한 성격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 네 요소 가운데 무엇이 먼저인지 굳이 구별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하라면 민주주의를 내세워야 한다.” (171쪽)
“사람들은 신화를 창조하고 쉽게 믿는 경향이 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긍정적인 면만 보고, 싫어하는 사람에게서 부정적인 면만 본다. 교훈을 강조하고 싶은 역사는 미화하고, 그 반대의 역사는 저주한다. 신화를 깨야 역사가 산다. 아니면 역사를 올바로 연구해서 신화를 깨야 한다.” (267~268쪽)
◆ 저자의 자기소개서 | 주명철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에서 2015년 8월까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내가 공부한 내용을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애쓰고, 역사교사가 될 학생들에게도 이른바 ‘꼰대’가 되어 우리말을 정확하게 쓰라고 닦달했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말해도 듣는 사람이 들을 생각이 없으면 소용없다는 사실만 계속 확인했지만, 되도록 그런 말만 하라고 나라에서 주는 월급의 무게를 이겨내고자 비교적 성실하게 살다가 정년퇴임했다. 지나온 과정을 돌이켜볼 때, 내가 만난 학생들은 반드시 가르쳐야 알아듣는 사람들이 아니기에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공감하려고 노력하되 섣불리 좋다거나 싫다고 판단하지 않고 당대의 공동선에 비추어 판단하려고 애쓰리라 믿으며 안심한다. 그러나 늘 사실과 진실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개인의 경험을 되살려 타인의 경험을 재체험하고 공감하는 교육자가 되라고 분명히 말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내가 퇴임한 후에 급변한 정치 상황과 그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수많은 매체가 날마다 ‘팩트’라고 전한다. 과연 진실성을 믿을 만한 ‘사실’이 몇 개나 될까? 따분하고 화나는 현실에 마음공부를 하자고 결심하고 불가의 고승들이 모든 물질과 생각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를 본받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모든 판단은 역사적 판단’이라는 점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현실세계에서는 물질과 정신이 인연에 따라 얽히고설켜 있지만, 역사적 판단으로 대상의 본질을 이해하고 곁가지를 하나하나 떼어내는 작업은 세상의 본모습에 다가서는 유일한 길임을 잊지 않는다. 게다가 글쓰기는 몸이 기억하는 직업병이다. 그래서 ‘이판사판역사판’을 마음에 새기면서, 진실·사실·팩트가 뒤섞이고 과거·현재·미래가 뒤얽힌 글을 자유롭게 쓰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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