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버리는 나라
About this Book
버리고, 싸우고, 마침내 되찾기까지
국가 폭력의 장막을 찢는 날카로운 기록
★ 김인정 작가, 조세영 감독 강력 추천
버려진 국민이 제기하는 혐의
2012년 6월 미국 국경에서 생후 15일 된 한국 아기가 보호자 미동반 외국인 아동으로 분류되며 난민아동수용소에 보내질 위험에 처한다. 옆에는 아기를 입양할 것이라고 말하며 서툰 글씨로 작성된 친모의 입양 동의서를 들이미는 미국인 여성이 있다. 하지만 그의 주장과 달리 아기는 90일 단기 체류가 허가되는 비자를 발급받았을 뿐이다.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은 명백한 불법 이송, 자칫하면 인신매매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국제입양이라는 미명하에 불거진 이 사건은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저자의 증언으로 마침내 기록되었다.
아기의 이름 이니셜을 따서 명명된 ‘SK 사건’은 국가가 불법 국제입양 아동을 되찾은 유일한 사례이자 당시로서 60여 년간 지속되어왔던 관행과 제도를 뒤흔든 이례적인 사건이다. 보건복지부 아동복지정책과장으로 근무하던 저자는 스테판 욘손의 말처럼 ‘한 눈으로는 냉정하게 과거를 바라보고 다른 한 눈으로는 사건에 휘말린 목격자’를 자청한다. 아무도 들춰보지 않는 곳을 조명하고 납작 엎드려 귀 기울이는 일은 범상하고 만연한 폭력을 주춤거리게 한다. 아기를 되찾는 여정에 최후의 보루로 연루되었던 저자의 이 르포르타주를 따라가다보면 국가 폭력의 장막이 한 겹씩 벗겨지고 서서히 진실이 드러난다. 미혼모 시설에 거주하던 십대의 친모, 입양을 종용한 시설장, 배후에서 활약한 브로커 김 목사, 모든 사건의 발단인 엉터리 자문을 한 변호사. 완벽하게 짜맞춰진 퍼즐 위로 부조리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이를 눈감을 수 없게 했던 미심쩍음과 가책의 정동은 지금 우리에게도 진실의 폭풍 속으로 함께 들어가자고 재촉하는 듯하다. 국제입양으로 포장된 구원의 서사에서 벗어나기로 작정해야만 이 책이 이끄는 진실에 가닿을 수 있을 것이다.
그해는 미국과 한국 모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축을 벌였으며 특히 오바마 대통령 대선 캠페인의 이민법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점화됐다. 정치권부터 각종 언론의 이목이 SK 사건에 쏠렸다. 주 전장은 일리노이주 법원이다. 미 연방정부의 국토안보부와 국무부를 대리하는 법무부 연방 검사, 한국 정부의 변호사와 보건복지부 공무원, 양부모 측에서 선임한 변호인단이 법정을 채웠다.
아동의 신병을 책임질 후견권을 놓고 당사자로 호명된 양국의 주요 부처들은 각자의 법리를 펼쳤지만, 사실 한국에서는 법무부 부장검사가 이 와중에도 직급을 운운하며 물정 모르는 법리 검토서를 보내왔고, 여성가족부는 사건의 직접 조사를 미루며 발 빼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따라서 이곳이 마지막 전선이다. 저자가 목격한 모든 정황과 진술은 한국이 국제입양을 관할하는 사법제도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음은 물론, 해묵은 악습 속에 이뤄진 방관 그리고 이익을 따진 계산들로 ‘아동 최선의 이익’이라는 의제가 레토릭에 그쳐왔음을 폭로한다. 한국 국제입양의 주소는 국민을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법정에 불려와야 할 첫 번째 피고인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였음이 자명해진다.
불법 입양을 시도한 미국인 여성은 이렇게 말한다. 자신은 SK를 한국이라는 나라로부터 구하는 것이라고, 어차피 한국은 아기를 고아원으로 보낼 것 아니냐고. 대한민국에 대한 강력한 불신과 그와 같은 혐의 제기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는 곧이어 밝혀진다. SK를 입양하려던 그 또한 수십 년 전 한국에서 미국으로 보내진 입양인이며 그의 첫딸도 같은 기관으로부터 입양된 아이라는 사실은 법정을 충격에 빠뜨린다. 입양 당사자라는 것이 SK 불법 입양 시도에 면죄부가 되진 않지만, 그의 눈빛에서 저자는 SK를 되찾겠다는 국가의 당위를 수렁에 빠뜨리는 이 나라 역사에 대한 냉소를 읽는다. 국민을 버리며 재난을 자처했던 국가가 과연 두 눈을 부릅뜬 당사자 앞에서도 스스로 아기의 보호 당국이라 주장할 자격이 있는가. 국제입양이라는 국가 폭력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질문이 발화되는 순간이다. 국민을 버리는 나라, 어째서 이 같은 일은 반복될 수 있었는가. 궁극적인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아기 슈퍼마켓의 나라
작위적 비존재 ‘고아’들의 귀환
2013년 민법과 입양특례법의 개정은 가정법원이 모든 아동의 입양을 결정하도록 했다. 사인私人에게 지워졌던 일이 마침내 공적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다. 한국은 70년간 20만 명을 입양 보낸 최대 최장의 아동 송출국이다. SK 사건은 기존의 입양 기관이 설정한 경로에서 벗어났다는 근거로 불법이라 판단됐지만 대체 무엇이 불법이고 아닌지, 사적 기관이 중개하는 국제입양은 적법하다고 볼 수 있는지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이 같은 관행은 ‘제3세계 국가로부터 아이를 구하자’ ‘이 아이는 내게 오기로 운명 지어졌다’는 서사들로 정당화됐고 ‘국제입양 아동 대부분은 미혼모의 아이들’이라는 증명되지 않은 슬로건으로 떠받쳐졌다. 양육 능력이 없는 미혼모들에게서 아이의 흔적을 말끔히 지워주며 그들의 팔자가 꼬이지 않도록 돕고 심지어 아이는 부잣집에서 잘 키워준다는 신화는 불법과 탈법을 동원하며 한국 사회에 팽배해 있다. 따라서 이를 해체하려면 국제입양을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봐야 한다. “국제입양은 아동복지정책도 자선사업도 아니다. 그냥 글로벌 비즈니스다.” 낸시 프레이저가 자본주의를 경제 유형으로서만 보지 않고 제국주의적-인종주의적 착취와 수탈이 얽힌 사회의 한 유형으로 다시 봤듯, 국제입양 역시 제국주의 및 식민주의가 뒤얽히며 출현한 거대한 글로벌 비즈니스로 관철되어야 한다.
이러한 산업의 토대를 마련하고 자본을 유통한 것은 국가다. 1980년대 초 한국 입양 기관으로 들어오는 금액은 아동 1인당 3000달러였고 70여 년간 항상 한국의 1인당 GDP를 웃도는 수준을 유지했다. 국가는 아동 보호 의무를 방기하는 데 최적화된 사법 체계를 유지하며 산업을 지탱했다. 국제법과 인권 규범은 출생‘등록’을 통해 국가의 적극적 책무를 강조하지만 한국의 출생‘신고’는 부모의 신고 의무를 강조하는 것이 전부다. 서구에서 이식해온 법제는 피상적인 모방에 그쳤으며, 이로써 국가는 처절히 실패한다. 특히 1960년 ‘고아’로 위장 등록되어 마치 주인 없는 물건처럼 국외로 처분된 아이는 수천 명에 달한다. 정부에서 체계적으로 발행한 고아호적, 고아증명서, 후견인 증명서, 후견권 인수인계서는 아동의 정체성 권리를 침해해온 국가 폭력의 증거로 제출되었다. 지금 그렇게 삭제되었던 국제입양인들이 한국 사회로 돌아오고 있다.
태어난 나라에서 자기 문화와 정체성을 유지하며 자랄 권리는 모든 사람의 근본적 인권이다. 국제입양인들이 말하는 ‘정체성을 알 권리’란 단독자로서 존재하려는 우리 모두의 근본적인 열망과 닿아 있다. 부패한 역사를 찢고 지금 우리 앞에 출현한 과거는 이 책의 다음 장에 무엇을 쓸 것인지 묻는다. 관련자 누구도 큰 타격을 받지 않은 채 기억에서 안전하게 삭제된 SK 사건을 되살리는 일은 ‘다 아기를 위한 것’이라는 알리바이와 공모의 유혹을 털어내고, 정범이 되지 않을 최후의 기로 앞에 우리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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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태어난 지 15일 만에 미국으로 들어가려던 SK는 불법 입양을 시도한 미국인 부모의 집에서 5개월간 함께 살았다. 위탁 가정을 수소문했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아서다. 이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법정 공방을 하는 동안 아이는 이미 그 가정에서 애착 형성기를 보냈기에 한국으로 되돌리는 일은 오히려 비난을 살 법했다. 더욱이 불법 입양을 시도한 미국 가정은 막대한 부를 보유한 데다 한국인의 피를 가지고 있어 여론전에서 훨씬 더 유리한 입장에 서 있었다. 한국의 입양 기관들은 선진국이고 부잣집이면 불법이라 해도 대체로 입양을 바람직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은 아이의 의사를 배제한 채 이뤄진다. 이 르포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아동 최선의 이익’을 놓고 거기서 이탈하는 모든 요소를 되돌리는 분투의 과정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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