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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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은 푸르른 가을 하늘 아래, 마당가로 이어진 감나무의 가지에만 오롯이 꽂혀 있었다. 팔을 뻗어 하나를 딴 후 함안댁의 치마폭에 던져 주고 또 하나를 따서 을미 어멈에게 건네다 보니 어느 순간 별당으로 이어진 감나무의 가지에는 감이 하나도 없게 되었다.
연희는 욕심이 생겼다. 본채로 이어진 가지를 바라보며 조심히 나무둥치를 잡고는 팔을 뻗을 때였다.
“누구냐!”
아래서부터 들려온 음성에 너무 놀란 나머지 연희는 그만 균형을 잃고 땅으로 낙하하였다.
“마님!”
별당에서는 함안댁과 을미 어멈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연희는 사내의 품에서 눈을 질끈 감은 채 누워 있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들었다.
‘맙소사!’
그녀가 깔고 누운 이는 다름 아닌 그녀의 낭군님 유현이었다. 유현이 가느다랗게 눈을 뜬 채로 연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한참 흔들리는 눈으로 연희의 얼굴을 바라보다 물었다.
“누구냐.”
연희는 유현의 시선에 갇힌 채로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얼른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그때 유현이 연희의 팔목을 잡아 왔다.
“누구냐고 물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설마 서방님께서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계시나?’
연희는 아린 마음을 안고서 몸을 돌려 서방님을 지그시 응시했다. 하지만 그 시선 안에 그녀를 알아본 기색이라곤 조금도 담겨 있지 않았다.
“말을 하지 못하느냐.”
다그치는 말에 놀란 연희가 얼른 답했다.
“연희…… 여요.”
“연희?”
이름자만 불린 건데도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몸이 닿은 적은커녕 지금껏 서로 이리 마주 본 적도 없지 않은가. 발갛게 물든 얼굴을 하고서 조심히 서방님을 응시할 때였다.
“마님! 괜찮으셔요?”
별당 겹문을 넘어 본채 중문까지 달려온 함안댁과 을미 어멈이 펄쩍 뛰며 연희를 부르고 있었다.
연희는 얼른 유현에게서 손목을 빼낸 후 도망치듯 중문을 넘었다.
“이봐!”
뒤에서 들려온 말에 연희는 아주 찰나 고개를 돌렸다. 나풀거리는 옷고름 사이로 서방님의 얼굴이 보였다. 흔들리는 미간 사이로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뚫어져라 바라보는 눈동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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