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

About this Book

 

“먹는 자와 먹히는 자 사이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습니다”

 

동서양의 옛이야기, 종교와 문화, 동아시아 근대화 과정과

현대의 육식 문제를 통해 ‘남의 살을 받는 최소한의 도리’를 생각하다

 

 

《불편한 미술관》, 《히틀러의 성공시대》, 《십자군 이야기》 등을 펴낸 만화가 김태권이 신간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를 출간했다. 김태권 작가는 이번 책에서 고대 신화를 비롯해 다양한 종교와 역사 속 인물을 빌어 인류 문명에 깃든 육식 문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도와 일본, 그리고 조선이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서양의 육식 문화를 받아들이고, 고기의 육수 맛에 따라 중국의 정치 지도자가 바뀌었다는 이야기 등 알고 보면 세계의 역사와 정치 그리고 시사적인 이슈가 ‘고기’에 담겨 있다. 저자는 평소 관심 있었던 빅데이터를 이용해 곱창의 ‘곱’의 의미를 추적하고, 외국에서 말하는 한국식 ‘코고’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함께 들려준다. 나아가 한국인이 가장 즐겨 먹는 치킨을 통해 공장식 축산의 문제부터 ‘육식의 대안점’까지 두루 살핀다.

육식 문화는 언제나 인류와 함께였다. 옛사람들은 고기를 먹는 일이 남의 생명을 빼앗는 일임을 잘 알고 있었으며, 잡아먹힌 동물에게 제사를 지내주거나 최소한의 식량을 위해서만 사냥을 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나름의 예의를 지켜왔다.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가 인류의 육식 문화를 통해 환기하고자 하는 건, 결국 고기를 먹는 일이란 남의 살을 받는 일이란 점이다.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내가 누군가를 죽이고 그 살을 먹는다는 사실을 먹는 내내 자각하는 것,

이것이 나의 ‘육식의 모럴’, 목숨을 잃은 동물에 대한 예의입니다”

 

 

“고기를 먹으면서도 왜 고기 먹는 게 불편할까?”라는 물음에서 책을 써 내려간 저자는 고기를 먹는 사람 사이에도 서로 다른 ‘육식의 모럴’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 통으로 구워진 닭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잘게 썰린 오징어 회를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닭을 통으로 굽든, 오징어를 잘게 썰든, 이 모두는 바로 남의 살이라는 사실. 저자는 도리어 육식은 남의 살을 빼앗는 일이라는 근본적인 사실을 상기한다.

 

1장 <먹느냐 먹히느냐>에서는 동서양의 옛이야기와 고전 작품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버르집는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조선 후기 민화집 <파를 심은 사람들>에는 사람이 동물(혹은 거인)에게 잡아먹히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를 통해 인간과 동물의 먹고 먹히는 관계가 언제든 역전될 수 있으며, 생명을 빼앗는 일은 함부로 다루어질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간 또한 언제든 죽임(잡아먹힘)을 당할 수 있다는 막연한 공포를 이야기로 지어내, 살을 내주는 생명의 귀함을 깨닫게 하는 옛사람들의 지혜가 대단하다. 김태권 작가가 이번 책에 그려넣은 그림 대부분이 ‘동물의 인간 형상화’인 건 바로 먹고 먹히는 관계가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는, 이들 신화와 민담집에 착안하여 그렸기 때문이다.

 

2장 <육식의 역사와 문화>에서는 역사 속 인물이 좋아했던 고기 요리를 통해 당시의 육식 문화를 돌아본다. 《논어》를 보면 공자는 잘게 썬 ‘이것’을 싫어하지 않았다는데, 오늘날도 사랑받는 이 요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메디치 가문이 스테이크로 민심을 샀다는데 진짜일까? 한편 피렌체의 고기 요리도 못 먹을 만큼 스트레스를 받으며 <다비드>상을 만들던 미켈란젤로는 오로지 ‘이것’만 먹었다고 한다. 덕분에 방귀 냄새가 지독했을 것이라는 후문. 이 장에서는 다양한 종교에서 허용하거나 금지하는 ‘고기’와 종교적 ‘규율’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중세 기독교에서 ‘비버’를 물고기로 지정해서 먹었다면 믿기는지? 고기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이 장에서 펼쳐진다.

 

3장 <모더니티와 고기고기>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전개된 동아시아의 근대화와 육식 문화의 관계를 다룬다. 당시 인도와 일본 그리고 조선에서는 서양이 잘 사는 이유가 고기를 먹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은 육식으로 체격을 키우고 사회를 근대화해야 서양을 이긴다고 생각했고, 인도에서는 고기를 먹지 않아 약한 민족이 되었다고 믿었다. 채식주의자인 간디가 영국을 이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염소고기를 먹어야 했을 만큼 “근대화를 이루려면 고기를 우걱우걱 먹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던 시절이다. 한편, 조선인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 홍종우는 일본에서 구한 재료로 김옥균에게 프랑스풍 요리를 대접하며 그에게 살갑게 구는데(결국 그는 김옥균을 암살한다), 당시가 바로 조선 전역에도 근대화의 열풍이 불던 시기다. 과연 홍종우가 해준 요리에는 고기 요리도 있었을까?

 

고기를 먹어야 부자란 소리를 듣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푸성귀(?)가 밥상에 올라야 진정한 부자이며 가공육과 MSG가 들어간 고기 요리는 서민의 밥상에 오른다. 4장 <부자의 식탁, 빈자의 식탁>에서는 고기를 중심에 두고 더욱 정교해진 차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국의 유명한 코미디 그룹 ‘몬티 파이튼’은 대표적인 가공육 ‘스팸’의 지겨움을 콩트로 표현했고(3장의 내용 일부), 소스와 MSG가 들어간 고기 요리는 요리의 질에 대한 의심을 부른다.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과시적 소비 이론을 통해 인간은 과시하기 좋아하는 존재이고, 과시적 행위 중에 으뜸은 번거롭고 쓸모없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장의 6번째 이야기를 통해 부자(?)들의 고깝기만 한 궁극의 잘난 척 ‘미식 취향’에 대해서도 함께 살핀다.

 

5장 <고소한 치킨의 씁쓸한 뒷이야기>에서는 현대로 넘어온 육식 문화를 다룬다. 고기를 싸게 먹을 수 있는 이유, 바로 많은 동물을 한꺼번에 가두고 키우는 공장식 축산이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공장식 축산의 비윤리적 행위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며, 고기를 먹는 사람들조차 스스로 ‘육식의 모럴’을 되돌아볼 만큼 잔인한 방식인 것만은 틀림없다. 5장에서는 한국인이 유독 야식으로 많이 찾는 치킨을 중심으로 공장식 축산 문제를 짚고 넘어간다. 이 문제를 없애기 위해 나오는 다양한 시도 중 하나는 고깃값의 인상이다. 그렇다면 고깃값을 올리면 모든 문제가 없어지는 걸까. 고깃값이 오르면 서민들이 고기를 사 먹는 데 부담은 없을까. 이는 영세업자인 치킨집 사장님과 배달원, 양계업자의 처지가 담긴 치킨값의 고민으로 확장된다.

6장 <고기고기에 대해 알고 싶은 것들>에서는 그동안 궁금했던 고기의 궁금증을 풀어본다. 빅데이터를 분석해 한국식 핫도그의 인기 이유를 살펴보고 외국인이 말하는 ‘마늘스프’의 정체를 역추적한다. 우리가 즐겨먹는 곱창의 ‘곱’과 지역마다 다른 ‘두루치기’의 정체까지 들어는 봤지만 잘 알지 못했던 고기 요리에 대한 궁금증이 이 장에서 풀릴 것이다.

 

7장 <우리는 육식의 시대를 넘어설 수 있을까>에서는 고기 맛에 익숙한 사람들의 입맛을 지금 당장 끊을 수는 없지만 자연스럽게 고기를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살핀다. 이 책은 육식을 끊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동물 배양 세포를 가지고 실험실에서 배양한 고기 등 고기 맛이 나는 요리가 개발되고 있으며, 고기처럼 씹고 뜯어 맛보는 일이 고기 말고 다른 요리에서 가능하면 천천히 육식이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어본다. 이외에도 식용곤충부터 채식, 그리고 여전히 논란은 있지만 육식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MSG를 소개하며 육식의 시대 그 이후의 전환에 대해 가늠해본다.

고기를 끊고 안 끊고의 문제는 순전히 개인의 몫이며, 정답은 없다. 다만 고기를 먹는다면, 적어도 고기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알고 먹는 게 ‘책임 있는 육식’을 위한 중요한 자세다. 이 책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는 인류 문명에 깃든 육식의 문화사에 대해 서술하는 동시에 고기는 결국 남의 생명을 빼앗는 일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힌다. 고기를 먹으며 즐거워하는 것도 목숨을 빼앗으며 미안해하는 것도, 그 점을 굳이 숨기려하는 것도 드러내려 하는 것도 인류 문명의 역사에 거듭거듭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책을 마치며 저자는 말한다. “미안한 마음 없이 고기 또는 고기 비슷한 먹을거리를 즐길 날까지 우리 모두 잊지 않기를. 먹히는 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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