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빛이 내린 동시집
About this Book
물소리를 떨어뜨리면 물소리가 떨어져. 바닥에, 밑바닥에 물소리를 떨어뜨리면 나뭇잎의 눈시울에서 눈물이 떨어져. 눈 덮인 산기슭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의 소리. 눈 내린 낡은 지붕에서부터 밑바닥에까지 이어져 있는 낮은 소리의 가닥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소리. 또 귓가를 적신다. 닫힌 귓전을 두드린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들리지 않았는데, 정신을 가다듬고 얼어붙은 어제의 옷장에서 꺼내 든 어제의 옷가지들에서 물소리가 떨어지기 시작했지. 귀에 들려오는 것은, 먼 데서 출발해 소리의 정류소를 경유해 멀리 떠나가는 소리. 운행하는 시야의 한쪽 모퉁이에는 어제 들었던 소리들이 구겨진 채 내버려져 있고, 지나가는, 무심히 어디엔가로 헤엄쳐 가는 발등 위의 빗금들은 반복되는 규칙 속에서 새로운 기다림의 곡선 사이로 다가서고 또 뛰어들려 하지. 시선과 시선 속에서 닫힌 소리의 껍질을 깨고 밀려 나오는, 거친 숨결로 솟구쳐 밀려 나오는, 겨울을 품에 안은 새날의 소리들. 같은 시선, 다른 얼굴로 서로를 보고 있지만 그들 사이에는 같은 듯 다른 실재하는 하나의 흐름이 놓여 있을 뿐. 그 흐름을 타고서 물소리가 흐른다. 나뭇잎의 눈앞에서 떨어져 나와 눈 덮인 산기슭을 지나 눈 내린 낡은 지붕 위로 떨어졌다가 밑바닥으로 떨어져 버린, 하루 내내 기다리며 지켜보았던 눈 뜬 새 아침의 그 겨울 물소리가 흐른다.
Source: View Book on Google 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