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About this Book
우연해서 더 반가운 야생 동물들!
동물원 수의사 최종욱,
뜻밖의 만남을 찾아 길을 나서다
동물원에서 700여 마리의 동물과 20년째 동고동락하고 하고 있는 최종욱 수의사가 색다른 여행을 떠났다. 길 위에 사는 야생 동물들을 만나러 간 것이다. 지리산 둘레길부터 시작해 담양, 경주, 우포늪까지 곳곳을 돌아다니며 동물들을 만나고 그 즐거운 여정을 기록했다.
오랫동안 동물과 함께해 온 수의사답게, 여행 내내 수의사의 온 감각은 동물들을 향해 열려 있다. 등 뒤에서 스르륵 지나가는 족제비의 움직임, 하늘 위에서 “까각” 하는 파랑새 소리, 겨울 산 눈길 위에 찍힌 산토끼 발자국까지 보통 사람이라면 무심히 스쳐 지나갈 동물들의 존재감이 수의사의 섬세한 관찰력과 풍부한 지식 덕분에 제대로 펼쳐진다. 사계절을 수놓는 여러 동물들의 살아 있는 몸짓은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동물이 함께 살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하면서 동시에 잃어버린 생태 감수성을 일깨운다.
희생된 동물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시작한 걷기 여행
약속도, 준비도 없지만 그래서 더욱 즐거운 야생 동물과의 만남
걷는 습관은 아주 우연히 시작되었다. 동물원을 떠나 도축 검사관으로 도축장에 파견되어 일하던 때, 최종욱 수의사는 일이 끝나는 오후가 되면 주변의 둑길을 무작정 걸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진정되고, 동물들을 위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을 위해 희생된 동물들을 추모하며 시작된 걷는 습관은 도축장을 떠난 뒤에도 계속되었다. 시간이 나는 날이면 길을 나서서 무작정 걸었고, 동물이라면 무엇 하나도 무심히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 덕분에 그 길은 자연스레 야생 동물들을 만나러 가는 여행이 되었다. 흔히 이런 여행을 생태 관광, 생태 여행이라 부르는데 최종욱 수의사는 그중에서도 멋진 풍광이나 식물이 아니라 야생 동물들을 찾아가는 여행을 떠난 셈이다.
동물을 만나러 떠난다지만 이런 만남은 미리 약속이나 예약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무작정 걷다 보면, 그 계절의 동물들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날 뿐이다. 오랫동안 동물과 함께한 사람만이 체득한 예리한 감각으로, 수의사는 동물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는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 낸다. 곤충이 풀숲에서 바스락대는 소리부터 오묘한 똥 냄새까지 수의사에게는 어느 것 하나 예사로운 것이 없다. 수의사의 오감에 포착된 다채로운 생명의 몸짓들은 우리 주변의 평범한 동물들을 새롭게 보게 하면서 우리의 자연에 얼마나 많은 생명이 깃들어 살고 있는지 깨닫게 한다. 그럼으로써 무뎌진 생태 감각을 되살려 낸다.
사계절을 수놓는 다채로운 생명의 몸짓
평범한 동물들이 일깨우는 생태 감수성
동물을 찾아 떠난 여정은 계절별로 기록되어 있다. 봄부터 여름, 가을을 거쳐 겨울까지 각 계절의 주인공들이 길 떠난 나그네와 조우한다. 봄에는 겨울잠에서 깨어난 숲속의 정원사 다람쥐가 멀찍이서 움직이고 강 위의 귀족, 왜가리와 백로도 날아다닌다. 오월이 되면 귀한 새 후투티도 만날 수 있다. 여름이면 짧고 굵게 사는 잠자리와 천천히 움직이는 무당개구리가 계절을 알린다. 물 위를 스케이터처럼 달려가는 소금쟁이와 멀티태스킹의 귀재 알락할미새도 여름의 주인공이다.
가을은 모두에게 분주한 계절이다. 메뚜기들은 짝짓기를 하려고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거미들도 여기저기 거미줄을 늘어놓느라 바쁘다. 전깃줄에 음표처럼 모여 앉은 제비들과, 블랙의 품격을 갖춘 까마귀, 최후의 발악인 양 울어 대는 말매미들도 가을을 장식한다. 겨울엔 살아 있는 동물을 만나기 어렵다. 눈 위에 남은 산토끼 발자국, 너구리와 족제비의 똥 같은 흔적으로 그들의 존재를 짐작할 뿐이다. 그래도 순천만과 우포늪에는 겨울의 진객들이 찾아온다. 순천만의 흑두루미, 우포늪의 큰기러기는 겨울에만 만날 수 있는 거대한 생명력이다.
사계절의 변화는 동물들과 함께하며 더욱 생생하게 다가오고, 평범한 동물들의 살아 있는 몸짓은 놀라운 감동을 전한다. 자연에는 무엇 하나 대단하지 않은 것이 없고, 또 그렇게 대단하지 않으면 자연에서 살아나갈 수 없다.
최종욱 수의사는 단지 동물들을 눈으로 관찰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들을 마음으로 환대한다. 사소한 움직임에서도 의미를 찾고, 그들의 삶을 상상하며 어떻게 그들과 평화로이 공존할 것인지 조심스레 방법을 찾는다. 동물을 대하는 겸손한 태도와 자연을 아끼는 마음이 은은한 울림을 남긴다.
▶ 책 속으로
그냥 땅에 떨어진 도토리는 대부분 썩어 버리지만 다람쥐가 잃어버린 식량 창고 속 도토리는 봄이 되면 발아를 해 나무가 된다. 그래서 다람쥐를 숲의 정원사라 부른다. 다람쥐가 자기 것만 챙기는 악착같은 수전노였다면 낙엽 활엽수의 근사한 숲은 형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22~23면)
‘길고양이’가 있어 도시에 정서가 살아 있고 야생 동물들도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것 같다. 어쩌면 ‘길고양이’는 기계가 지배하는 지구를 구하는 ‘은하 철도 999’처럼, 인공 지능이나 로봇을 추구하는 메마른 우리 시대에 마지막으로 자연이 던져 준 선물이자 기회일지도 모른다. (35면)
정작 다른 경주 시민들은 후투티나 사진사들에게는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 주변에 돗자리를 깔고 아이들과 놀거나 산책을 했다. 호기심이 없는 건지, 알면서도 일부러 모르는 척해 주는 건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들의 방식이 가장 후투티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공존은 이렇게 슬며시 담장을 없애고 대문을 열어 두는 데에 있다. 이는 텃새인 참새나 직박구리 들이 우리 곁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48면)
이런 무지막지한 날에 그래도 활개치고 태양 속을 돌아다니는 짐승은 아마 사람이 유일할 것이다. 대부분의 포유동물은 이럴 때 그늘 아래에 들어가 휴식을 취한다. 털이 많고 땀이 없는 동물들은 조금만 움직여도 사람보다 체온이 훨씬 많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어떤 동물은 너무 더우면 아예 땅속에 들어가 하면, 즉 여름잠을 잔다. 유독 사람만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기어이 뭔가 하고자 하는 사명감에 불탄다. 그래서 또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고 움직여 보려 하니까. 그런데 그게 과연 바람직한 삶의 방식일까? 늘 물음표가 생긴다. (66면)
가을 길을 여러 번 걷다 보니 드는 느낌이 하나 있다. 가을날에는 동물들이 매우 서두른다는 것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메뚜기 떼가 짝짓기를 하려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탓에 우리가 가는 내내 몸에까지 부딪혀 왔다. 큰 녀석은 암컷이고 작은 녀석이 수컷이다. 이 계절, 암컷은 될 수 있는 한 여러 마리의 수컷과 짝짓기를 해서 알을 낳고 마지막 생을 활활 불태우려 한다. 그들에게 아쉬움이나 회한 같은 건 사치인가? 마치 ‘카르페 디엠!’ ‘내일은 없다. 오늘에 최선을 다하자.’ 하는 것 같다.
(90~91면)
까마귀는 언제 봐도 여유 있고 품위 있는 새이다. 몸에서도 블랙 정장의 세련됨이 물씬 풍긴다. 판다같이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까치가 조금 더 화려하긴 하지만 블랙의 품격에는 감히 까마귀를 따라갈 수 없다. 요즘은 산까치며 물까치며 어디서나 까치들이 흔해서인지 오히려 이런 귀한 까마귀들에 부쩍 마음이 간다. 왠지 까마귀들이 더 속 깊은 것 같고, 고귀하고 귀족적인 풍모도 엿보인다. 자존심을 지키고 사는 고고한 새처럼 느껴진다. 단지 목소리가 좀 품격에 반할 뿐이다. (102면)
오늘은 애당초 동물 보기는 틀린 것 같았다. 날이 너무 추웠기 때문이다. 이미 겨울잠에 들어갈 녀석들은 다 들어갔고, 깨어 돌아다닐 만한 고라니나 수달 같은 녀석들도 굳이 한낮에 나돌아 다닐 리 없었다. 괜스레 동물들이 겨울잠을 잘 듯한 바위 밑이나, 나무 그루터기 속 같은 곳을 들여다보았다. 그래 봤자 곰이라도 보일 리 없고, 보이더라도 일부러 들쑤시고 싶지 않다. (146면)
집은 사람이 살아야 유지되듯 자연도 생명이 깃들어야 유지된다. 자연은 우리 모두의 집이니 잘 지켜야 집 없는 설움도 없을 것이다. (182면)
Changbi Publis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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