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175호(2017년 봄)
About this Book
『창작과비평』 2017년 봄호가 출간되었다. 창간 50주년을 맞은 지난해 다양한 기획을 이어간 ‘창비’는 이제 새로운 50년을 향해 출발한다. 이번호에서는 특히 지금 한국사회의 ‘핵심현장’인 촛불광장에서 벌어지는 ‘혁명적 움직임’에 주목했다. 사회원로부터 청년세대에 이르는 다양한 필자들이 폭넓은 시야로 촛불의 현재에 대한 냉철한 고찰과 촛불 이후에 대한 다양한 전망을 담아내고자 했다. 문학 부문 역시 주요 작가들의 신작을 비롯한 다양한 기획을 통해 ‘문학 중심성’ 강화라는 당초의 다짐을 이어나가는 다채로운 장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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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
문학평론가 한기욱이 쓴 머리말 「블랙리스트와 ‘이면헌법’ 없는 세상을」은 박근혜 대통령의 여러 위헌적 범죄 의혹 가운데 비교적 그 실체가 빨리 드러나고 있는 ‘블랙리스트’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수구기득권 세력이 지배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유신시대 전부터 써온 비민주적 통치술의 일단을 블랙리스트가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대통령이 직접 창비를 ‘좌파 출판사’로 지목하며 지원 배제를 지시한 사실이 드러난바, 군부독재 시절 혹독하게 탄압받은 경험이 있는 『창작과비평』이 이 문제를 좌시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헌법적 구속력을 초과해 작동하면서 수구기득권층의 지배를 공고히 하는 데 이바지해온 관습적 이데올로기”인, 이른바 ‘이면헌법’(백낙청)을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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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촛불혁명, 전환의 시작 ---------------------------------------------------------------------
이번호 특집은 지난해 가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촛불집회의 혁명적 성격을 짚고 그것이 이뤄낸 것과 이뤄낼 것을 점검하며, 우리 앞에 어떤 선택이 놓여 있고 우리 사회의 큰 전환이 어디서 시작될 수 있는지를 논한다.
백낙청의 「‘촛불’의 새세상 만들기와 남북관계」는 촛불집회를 87년 6월항쟁, 체코의 ‘벨벳혁명’과 비교하며 세계사적으로도 유례없는 ‘시민혁명’으로 규정한다. 필자는 아직 진행 중인 혁명 상황에서 ‘정권교체’ 프레임에도 큰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는데, 이는 어떤 인물이 촛불 이후의 새세상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지를 따져보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울러 헌법에 관한 논의를 통해 한국사회에는 공포된 성문헌법 외에 반공반북의 가치관에 기초한 ‘이면헌법’이 있음을 지적하고, 이를 폐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탄핵 반대세력이 대통령 탄핵을 친북좌파의 책동으로 몰아붙이는 현재의 상황에도 주요한 시사점을 주는 것은 물론, 시민의 힘으로 이룩하고 있고 또한 이룩해야 할 새로운 세상의 필수 요건이기도 하다.
유철규의 「기로에 선 세계경제와 우리의 선택」은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는 폭넓은 시야로, 미·중 간의 이해관계 충돌과 긴장 국면에서 한국이 나아갈 길을 타진한다. ‘자국우선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이후의 미국과, 세계질서의 새 구심점 자리를 노리는 중국이 부딪칠 때 오히려 한국의 입지가 생겨나리라 전망하며 사드 문제도 이런 각도에서 풀어나가길 주문한다. 그리고 그때 한국의 입지란 특히 세계경제의 구조적 교착 속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구체적 전망이 세워질 터, 필자는 특히 4차 산업혁명과 저성장 국면에서 그 대응책은 ‘분배’에 있음을 역설한다.
황정아는 「민주주의는 어떤 ‘기분’인가: 김금희와 황정은의 최근 소설들」에서 촛불광장의 ‘정동(情動)’을 논한다. 세월호 이후 한국사회의 화두가 된 ‘가만히 있음’의 정서를 김금희 소설을 통해 읽어내고, 그것이 어떻게 ‘가만히 있지 않음’의 열정을 발생시키는지 짚는다. 삶의 ‘신성함’과 ‘하찮음’이 교차하는 순간들을 천착한 황정은 소설을 통해서는 삶의 ‘하찮음’이 광장의 빛으로 진화하는 마음의 궤적을 추적한다.
특집의 대미를 장식하는 [대화]는 87년 6월을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의 촛불좌담 「우리는 촛불을 들었다: 둑을 허문 청년들」이다. 강남역사건 이후의 페미니즘 액션그룹, 이화여대 학생회, 촛불광장의 퇴진행동에서 활동해온 참석자들이 촛불집회를 경험한 각자의 소감을 솔직하게 들려준다. 촛불집회의 원동력이 된 각계의 청년들이 서로 소통하면서 새로운 민주주의를 사유하는 모습이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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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설·시--------------------------------------------------------------------------------------
최근 한국문학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명인 김금희의 첫번째 장편 「경애(敬愛)의 마음」 연재를 시작한다. 미싱회사에서 일하는 ‘낙하산’ 팀장대리와 무뚝뚝한 여직원 간의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이 독특한 인물들의 미묘한 관계가 서사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어 하나같이 지금 한국소설의 대표주자로 손꼽히기에 손색없는 강영숙 김려령 김애란의 단편이 각기 뚜렷하게 다른 개성을 담아 흥미롭게 읽힌다.
시란은 김광규 박라연 송태웅 이제니 장수진 등 10인 시인의 다채로운 목소리로 꾸몄다. 이 가운데는 기성 문단의 ‘등단제도’를 거치지 않은 시인도 두명(유진목 조용명)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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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ㆍ작가조명ㆍ문학초점 --------------------------------------------------------------------
문학평론란은 시인 겸 평론가 박상수가 「발칙한 아이들의 모험에서 일상 재건의 윤리적 책임감으로: 2010년대 시와 시비평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근년의 시가 그려내는 풍경을 살펴본다. 2000년대의 젊은 시와 2010년대 젊은 시들의 어떤 경향들을 비교하며 세월호사건과 문단 성폭력 사태 이후 우리 시가 돌아봐야 할 지점들을 살핀다.
작가조명 코너에서는 최근 새 소설집 『빛의 호위』를 출간한 조해진을 신미나 시인이 만났다. 타자, 특히 우리 시대 약자들을 세심하게 형상화하면서도 익숙한 기법과는 부단히 거리를 두는 조해진의 내밀한 작품세계를 친근한 대화로 풀어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 계절에 화제가 된 문학 신간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문학초점란의 올 상반기 진행을 손택수 시인과 정주아 평론가가 맡았다. 김언 시인을 초대해 기준영 장강명의 소설과 안태운 이설야 황인숙의 시집을 두고 흥미로운 토론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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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
미국의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는 「자본과 돌봄의 모순」(Contradictions of Capital and Care)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적 재생산 간의 구조를 ‘자본과 돌봄의 모순’이라는 문제틀로 파고든다.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가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일부를 포섭하는 상황에서 페미니즘운동의 행로를 고민하는, 시사점이 큰 글이다. 안병옥의 「‘섭씨 2도’와 인류의 미래: 기술낙관론을 비판하며」는 기후변화에 대한 ‘기술낙관론’적 입장을 비판한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섭씨 2도 아래로, 나아가 1.5도까지 내린다는 2015년 ‘빠리협약’의 목표가 기후과학의 면에서는 물론 인류의 미래에도 긴요한 정치적 선택임을 말한다. 구갑우의 「‘핵무기의 문학’으로 회고록 읽기」는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등 분단과 핵 위기를 말한 회고록 네권을 꼼꼼하게 읽는 글이다. 한반도 및 동아시아 국제정세에 깊숙이 개입했던 이들의 진술을 교차검증해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흥미로울 뿐 아니라 북핵 문제를 풀어갈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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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
한홍구가 쓴 「촛불과 광장의 한국현대사」는 제목 그대로를 화두로 삼아 우리 현대사를 단숨에 꿰어낸다. 광장을 염원했지만 허락되지 않았던 지난 시절에서 시작해, 87년 6월항쟁부터 2002년 여중생 장갑차 사망 사건,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과 2008년 광우병, 2014년 세월호로 이어져온 대중저항의 움직임을 짚는다. ‘헬조선’의 ‘흙수저’들이 중심에 선 지금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바로세울 때임을, 그렇기에 촛불을 끌 수 없다는 목소리가 절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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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
탄탄하고 섬세하며 품격있는 작품들로 우리 소설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다져온 고(故) 정미경 작가를 추모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후배 작가 정지아 정이현이 고인의 삶과 문학을 돌아보는 글을 올렸다. 모순과 갈등의 세계를 단호한 시선으로 끝까지 바라보던 뛰어난 작가를 때 이르게 잃은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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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리뷰ㆍ촌평ㆍ대산대학문학상 ---------------------------------------------------------------
‘창비에 바란다’라는 제목으로 각계 인사를 초청해 창비에 대한 생각을 청해 들었던 ‘독자의 목소리’ 코너가, 더욱 다양한 독자의 세심한 소감을 가감 없이 들려주는 ‘독자 리뷰’ 코너로 옷을 갈아입었다. 영문학자 문병훈과 소설가 이주혜가 독자로서 지난호를 읽은 소감을 전했다. 촌평란에서는 과학, 여성, 국내외 문학서, 종교-인문서 등 국내외 저자들의 신간 7종에 대한 서평을 담았다. 아울러 올해 15회를 맞은 대산대학문학상 발표와 수상작도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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