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들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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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진이 사나운 날이었다.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예기치 않은 접촉 사고. 꼼짝없이 물어 주게 생긴 거액의 수리비.
벼락처럼 찾아든 절망이 하윤은 오히려 우스웠다. 어차피 바닥이니까.
안 그래도 최악인 상황에 이깟 불행쯤 얹어진다고 대수겠는가 싶어서. 한데.
“다 울었어?”
어쩌면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몰래 우는 모습을 들켰던 바로 그 순간.
“죽은 듯이 우네. 재주도 좋다.”
나직한 말투가 빈정거림이 아닌 것 같다고 느꼈을 때.
차라리 소리 내어 울라고, 그래도 된다는 말로 들렸을 때.
하윤은 직감했다. 뭔가 굉장한 일들이 벌어지게 되리라는 것을.
온통 까맣게 깊은, 왠지 야릇한 것도 같은 남자의 저 집요한 눈빛이,
단 한 순간조차 벗어날 수 없도록 그녀를 철저하게 옭아매리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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